팔미라 제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팔미라 Παλμύρα 𐡕𐡃𐡌𐡅𐡓 Tadmor | ||
존속기간 | 270년 ~ 273년 | |
위치 | ||
국가원수 | 황제 | |
주요 황제 | 와흐발라트(바발라투스, 270~272) | |
주요 섭정 | ||
팔미라어, 코이네 그리스어, 아람어 | ||
종족 | 팔미라인, 그리스인, 아람인 | |
성립 이전 | ||
멸망 이후 | ||
언어별 명칭 | ||
𐡕𐡃𐡌𐡅𐡓 (Tadmor) | ||
Παλμύρα (Palmýra) | ||
ܬܕܡܘܪܬܐ (Tedmurtā) | ||
Imperium Palmyrenum / Palmyra | ||
تُدْمُر (Tadmur) | ||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2.1. 건국 [편집]
2.2. 확장 [편집]
2.3. 멸망 [편집]
세 조각으로 갈라진 제국의 혼란을 수습한 인물은 270년 제위에 오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였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우선 북방의 게르만족의 침입을 차단한 후 팔미라로 향하였다. 로마는 팔미라에 항복을 권고했으나 제노비아는 자신을 '아우구스타'로 자칭하고 아들 바발라투스에게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내려 대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로마군은 팔미라군과의 두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바발라투스는 전사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 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포위당했고, 사산 왕조의 원조를 얻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려다 로마군에 붙잡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제노비아만을 포로로 잡고 팔미라에 일부 병력만 남긴 채 떠났다. 하지만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팔미라 시의 약탈을 허용했고 결국 팔미라 시는 개박살나면서 273년에 팔미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갈리아 제국도 다시금 로마 제국으로 통합되었다.
금방 망하고 재통합되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생기고 나서의 족적은 별로 없지만, 로마 내에서의 할거, 왕위쟁탈전, 사두정치 등의 형태가 아니라, 로마와는 별도의 팔미라라는 이름을 달고 독립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로마군은 팔미라군과의 두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바발라투스는 전사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 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포위당했고, 사산 왕조의 원조를 얻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려다 로마군에 붙잡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제노비아만을 포로로 잡고 팔미라에 일부 병력만 남긴 채 떠났다. 하지만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팔미라 시의 약탈을 허용했고 결국 팔미라 시는 개박살나면서 273년에 팔미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듬해 갈리아 제국도 다시금 로마 제국으로 통합되었다.
금방 망하고 재통합되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생기고 나서의 족적은 별로 없지만, 로마 내에서의 할거, 왕위쟁탈전, 사두정치 등의 형태가 아니라, 로마와는 별도의 팔미라라는 이름을 달고 독립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3. 대중 매체에서 [편집]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확장팩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로마의 부흥에서 신규 문명으로 추가되었다.
- 토탈 워: 로마 2 DLC 캠페인 분열된 제국에서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로마2/팔미라 제국 참조.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